본문 바로가기
여행

온천동(온천장)의 옛명소 동래별장

by 지식 대장장이 2023. 10. 25.
728x90
728x90

온천동(온천장) 옛명소 동래별장


래미안포레스티지아파트 3단지 앞 동래별장

온천동(온천장) 동래별장은 온천4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 래미안포레스티지아파트 3단지 앞에 위치한 아주 오래된 식당입니다.

현재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 전까지는 돌잔치, 가족모임, 부모님 생신 잔치를 많이 진행하곤 했습니다.

건물이 지어진지 약 100년 이상되어서 고목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온천4구역주택재개발이 시작될 때는 동래별장도 포함이 될 줄 알았는데 포함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동래별장

세월이 상당히 흐른 만큼 건물들도 많이 낡았습니다.

동래별장 간판
웅장한 대문 뒤 고목들

별장으로 운영을 했던 만큼 문만 봐서는 식당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동래별장(관광 스토리 해설판)

동래별장(관광 스토리 해설판)

동래온천은 학이 머무르며 치유했다하여 백로 온천이라 불리었던 곳으로, 신라 때에는 왕들이 나들이를 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동래온천의 명성은 멀리 일본까지 알려져 일본인들은 이곳 온천을 다녀온 것을 자랑하며 한국여행 1번지로 꼽았다.

1898년(광무 2) 조선과 일본의 동래온천 임차계약이 이루어 진 뒤 일본인 전용 목욕탕 겸 여관 야쓰시를 시작으로 일본인 대부호 도요타 후쿠타로가 봉래관(호텔농심 자리)이라는 대규모 여관을 열었다.

1915년 11월 1일 부산진에서 동래온천장 입구까지 전차운행이 시작되면서 동래온천은 일본인은 물론 우리나라 토호들과 한량들이 출입하며 풍류와 낭만을 즐겼다.

동래별장은 하자마 후사타로가 자신의 별장을 만든 뒤 하자마유겐이라 불렀다.

그는 일본 와카야마 출신으로 오사카 이호이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 21살 때(1880년) 지배인으로 부산에 건너왔다.

1899년 독립하여 수산업, 창고업, 곡물무역업으로 자본을 만든 뒤 토지와 가옥 등의 매입으로 부동산 왕으로 부산 3대 거부로 명성을 떨쳤다.

부산상업은행과 조선저축은행 이사, 부산토지(주)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4년 9월 일본천왕가 일족인 한원궁이 부산에 와서 하자마별장에서 숙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미군정청집무실로, 한국전쟁 때에는 부통령의 관저로 쓰이기도 했다.

1965년 고급요정으로 탈바꿈하며서 동래별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동래별장은 한국을 찾는 국빈급 인사는 물론 부산에 들른 대통령들도 들렀을 만큼 유명했다.

728x90

2005년 APEC 지정음식점

2005년 APEC 지정음식점이기도 했습니다.

동래별장 메뉴

동래별장 메뉴 가격

※ 2인 이상 주문이 가능합니다.

  • 점심 한상 정식 (1인분) 50,000원
  • 점심 한상 상 (1인분) 60,000원
  • 설 (1인분) 70,000원
  • 죽 (1인분) 85,000원
  • 송 (1인분) 98,000원
  • 매 120,000원
728x90

동래별장 왼쪽 골목

동래별장 왼쪽(좌측) 골목은 어릴 때 뛰어놀던 골목과 비슷해서 정감이 갑니다.

동래별장 오른쪽 골목

큰 도로와 접한 오른쪽(우측) 골목은 동래혁신어울림센터가 공사 중이서 옛골목의 정취는 없어지고 있습니다.

 

동래별장 내부 리모델링이 다 끝나고, 온천4구역재개발 래미안포레스티지가 입주를 하기 시작하면 이처럼 한가한 골목들도 활기가 넘칠 듯 합니다.

728x90
728x90

댓글